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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야기

우리가 먹는 음식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

요리 솜씨 가리지 않는 너그러운 식재료, 굴

연말이면 이런저런 모임 자리들이 생긴다. 오랜만에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려면 맛있는 음식과 대화를 이끄는 한두 잔의 술이 필요하다. 대체로 맛 좋은 요릿집을 골라 약속을 잡지만 오랜 친구들끼리는 편하게 집에서 모일 때가 있다. 이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굴이다. 제철 해산물은 대체로 맛이 좋지만 다듬고 요리하는 솜씨를 가리는 편이다. 굴을 제외하고 말이다. 굴은 시쳇말로 ‘금손’, ‘똥손’ 가리지 않고 제가 가진 맛을 마음껏 내어주는 편이다.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지금 맛보는 굴은 통통하고 탱탱하며, 구수하면서 감칠맛이 넘친다. 글_ 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굴 먹는 데도 때가 있다?

이맘때면 맛이 한껏 오른 바다 산물이 시장에 풍성하다. 명태와 대구는 희고 깨끗한 살에서 개운한 맛이 우러난다. 꽁치, 고등어, 방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은 반짝이는 몸의 윤기만큼이나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두터워진다. 새우와 오징어의 맛은 다디달고, 아귀는 탱탱하게 살이 올라 먹을 것이 한 가득이다. 조개도 집집마다 꽉 차게 살집을 불린다.

굴은 제 몸의 맛은 너그러이 내어주지만 계절은 까다롭게 가린다. 보리가 피면 굴을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즉, 늦봄과 초여름에는 굴을 피하라는 뜻이다. 이때는 굴의 산란기로 생식소가 발달하면서 독소를 품는다. 때문에 생굴을 먹을 경우 식중독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영어로 열두 달 중 ‘ber’로 끝나는 달에만 먹으라는 말도 있다. 바로 9~12월(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이다. 그러나 신선하다면 1~3월까지도 굴은 먹을 만하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일 년 내내 먹어도 안전한 굴도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3배체 굴’이다. 과일로 치면 씨 없는 수박과 같다. 3배체 굴은 생식소 발달을 억제해 여름에 먹어도 안전하다. 생식 활동에 사용할 에너지를 성장에 쓰기 때문에 일반 굴보다 큼직하게 자란다. 게다가 여름철에는 바다에 먹이가 더 풍부해 굴의 단맛이 겨울 굴보다 진하다.

우아한 풍미와 풍요로운 감칠맛이 매력

굴은 눈으로 보일 만큼 탄력이 좋고 깨끗한 우유색이 나며, 알 끝부분의 검은 테두리가 선명한 것이 싱싱하다. 신선한 굴은 손질이 필요 없는 요리 그 자체이다. 맑은 물에 흔들어 깨끗이 헹구고 물기를 잘 뺀 다음 그대로 먹으면 된다. 깐 굴 또는 알굴로 불리는 생굴은 그릇에 푸짐하게 담아 회로 즐긴다. 주로 초장에 찍어 먹는데 올리브 오일이나 레몬즙, 좋은 소금을 살살 뿌려 먹어도 맛있다. 알굴은 새콤달콤한 물회에 넣어도 별미이다.

껍데기째 유통되는 각굴은 그대로 찌거나 구워 먹는다. 쪄 먹을 때는 굴이 입을 벌릴 때까지 찜 솥뚜껑을 열지 않아야 맛있게 잘 익는다. 뿐만 아니라 중간에 열었다가는 각굴이 다 익어도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어 먹는 일이 고단해진다. 반각굴 또는 하프셀은 굴 껍데기의 한쪽을 뜯어낸 것을 말한다. 반각굴은 굴 위에 가볍게 간을 한 뒤 살집을 껍데기에서 조심스럽게 떼어 내고 호로록 마시듯 먹는다. 반각굴은 그대로 살짝 익혀 먹기도 한다. 오븐에 잠깐 굽거나, 가볍게 한 김 찌거나 토치 등으로 굴 표면을 살짝 굽는다. 익은 굴에서는 구수한 맛이 훨씬 진하게 나기 때문에 더욱 다채로운 양념을 얹어 즐길 수 있다.

굴,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

굴 요리는 다양하다. 손쉽게는 배나 무처럼 시원한 맛이 나는 재료를 채 썰고 신선한 채소와 굴을 새콤한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먹는다. 참기름을 곁들여 밥과 비벼도 맛있고 국수와 섞어도 좋다. 싱싱한 굴을 넣어 국을 끓이면 시원하고 개운한 가운데 감칠맛까지 우러난다. 가장 손쉽게는 무나 배추,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이는 것이고 미역, 명란, 두부와 함께 담백하게 끓이기도 한다. 물론 여러 해물과 함께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칼칼하게 끓여도 맛이 배어나 맛이 좋다. 단, 굴은 많이 익히면 질겨지므로 다른 재료가 거의 익었을 때 넣어야 한다.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굴밥도 있다. 탱탱한 겨울 무를 넣고 밥을 지은 다음 뜸 들일 때 굴을 얹으면 밥에 구수한 향이 배고 굴은 고소하게 익는다. 무의 시원한 단맛, 굴의 간간한 단맛, 쌀 특유의 달착지근함이 어우러진 맛이다. 찹쌀에 싱싱한 굴과 표고버섯을 함께 넣어 끓이는 굴죽은 겨울 추위를 달래고 입맛을 살려준다. 알이 잔 굴은 밀가루와 달걀로 옷을 입혀 전을 부친다. 알이 굵은 굴은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기거나 센 불에 채소와 함께 넣고 볶아 먹는다.

알이 굵은 남해 굴, 맛이 진한 서해 굴

우리나라 굴 생산지는 남해의 경남 통영, 서해의 충남 보령이 대표적이다. 남해에서 자란 굴은 알이 크고 살이 통통해 입에 넣으면 푸짐하다. 서해에서 자란 굴은 알이 잘고 맛이 진하다. 이는 양식 방법의 차이 때문이다. 남해 굴은 줄에 연결해 바닷속에서 키우는 방법(수하식)을, 서해 굴은 돌에 붙여 키우는 방법(투석식)을 주로 사용한다. 바닷속에 계속 잠겨 있는 굴은 먹이(플랑크톤)를 많이 섭취할 수 있어 알이 굵어진다. 반면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은 만조 때, 즉 물에 잠겼을 때만 먹이를 먹을 수 있어 크기가 작아진다.

봄이 제철인 별미 벚굴도 있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섬진강 근처에서 맛볼 수 있다. 벚굴은 담수에서 살며 어른 손바닥만 할 정도로 자란다. 바다 굴처럼 단맛이 많이 나지 않는 대신 맛이 순하고 구수한 풍미가 일품이며 덜 비리다. 겨울 굴이 슬슬 자취를 감출 즈음 벚굴이 나오니 바다 굴의 아쉬움을 달랠 길이 있다.

굴은 맛도 좋지만 손쉽게 상을 차려내기 좋은 재료이다. 굴을 껍데기째 푸짐하게 담아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할 수 있다. 게다가 굴은 섬세하고 본능적인 미식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몸에도 여러모로 이롭다. 굴은 산미가 있고 가벼운 화이트 와인과 곁들이면 좋다. 한 해가 저문다.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었던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겨울의 신선함을 한가득 맛보는 것도 근사한 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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