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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야기

우리가 먹는 음식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

소박하게 자라 풍요로운 여름을 맞는 메밀

5월에 닥친 때 이른 폭염은 여전히 낯설다.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갈수록 짧아져 아쉽기만 한데 5월부터 이러긴가 싶어 야속한 마음마저 든다. 하늘 탓을 해봐도 소용이 없으니, 우리는 그저 때이른 더위를 잘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뿐이다. 특히 더위가 찾아오면 입맛은 더욱 사라진다. 눈앞에 성큼 다가온 더위를 보니 대표적인 여름 음식, 메밀이 생각난다. 글_ 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메밀로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요리

메밀은 일 년 내내 쉽게 구해먹을 수 있지만 대표적인 여름 음식 식재료로 꼽힌다. 몸의 열을 내리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뇨작용을 돕고, 간 피로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쌉싸래하면서 은은한 풍미가 있고, 맛이 도드라지지 않아 여러 재료와 어울려 다양한 요리로 먹을 수 있다.
메밀로 제일 많이 해먹는 게 국수이다. 국수계의 수퍼스타라고 할 수 있는 냉면부터 전국 어디에나 있는 막국수, 메밀의 껍질을 벗겨 만드는 순메밀국수, 장국에 적셔 먹는 일본식 소바, 메밀로 만든 파스타도 있다. 메밀 반죽으로 수제비를 떠먹기도 하며, 만두도 빚는다. 메밀가루를 묽게 반죽하여 크레이프처럼 얇게 전을 부쳐 배추와 쪽파를 듬성듬성 얹고, 볶은 김치, 무, 고기 등을 넣고 말아 총떡을 만들기도 한다. 메밀 앙금으로는 묵을 쑤어 양념에 무치고, 찬 육수에 밥과 말아 훌훌 마시고(묵밥), 꾸덕꾸덕하게 말려 조리거나 불에 구워 먹는다.

메밀 요리의 대명사, 평양냉면

메밀로 만든 요리라고 하면 평양냉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식당에는 특유의 심심한 맛을 만드는 개성 있는 비법이 저마다 있다. 육수는 동치미 국물, 양지 육수, 돼지 육수, 꿩 육수 등 종류도 다양하고 배합도 가지각색이다. 냉면 가락은 도정을 거친 메밀로 빚어 회백색을 띈다. 그다지 질기지 않고 쉽게 불지 않는 특징이 있다. 가늘고 표면이 거친 면은 시원한 육수를 듬뿍 머금었다가 입안으로 배달해준다. 이처럼 육수와 면발에 집중하며 맑고 깊은 여백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평양냉면의 매력이다.

함흥냉면 대신 진주냉면

평양냉면의 대항마라도 보통 함흥냉면을 떠올리지만 나는 진주냉면을 꼽고 싶다. 진주냉면은 색색의 고명을 푸짐하게 올리고 색이 진한 육수를 그득하게 부어준다. 모양뿐 아니라 맛 역시 보는 만큼 화려하다. 해물을 삭혀 만든 독특한 육수에 통깨, 실고추, 오이, 배, 편육, 달걀, 달걀지단, 육전까지 모두 한 그릇에 담겨 있다. 여러 가지 재료가 올라가니 맛이 잡스러울 것 같지만, 웅숭깊은 해물 육수가 그 많은 재료를 품 넓게 안아준다. 특히 육수를 머금은 촉촉한 육전의 맛은 어느 음식에서도 보기 힘든 특별함이 있다.

‘반반’으로 즐기는 막국수의 진짜 매력

막국수는 우리나라 어느 지역, 작은 마을에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다. 막국수는 육수, 고명, 양념에 따라 그 맛이 수 없이 다채로워진다. 시원하고 찡한 동치미 국수에 말아 먹으면 구수한 면발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김과 참깨, 참기름을 곁들여 고소한 맛을 더해도 좋다. 소나 돼지의 뼈를 10시간 이상 푹 고아 기름을 여러 번 걷어낸 맑은 육수를 부은 다음 백김치를 곁들여 내기도 한다. 과일과 약재를 달여 달착지근하게 국물을 만들고 육수를 섞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막국수의 매력은 ‘반반’이다. 양념장에 채소, 고기 고명을 얹고 비빔국수로 먹다가 반 쯤 남았을 때 육수나 면수를 자작하게 부어 다른 맛으로 즐기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막국수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쟁반국수이다. 양배추, 당근, 깻잎, 쑥갓, 절인 무, 오이, 대추, 밤, 잣, 통깨를 비롯한 풍성한 부재료에 육수를 내고 남은 고기까지 얹어서 비비면 2~3명이 먹어도 거뜬한 양의 쟁반국수가 탄생한다. ‘막국수’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일까. 껍질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은 메밀만 모아서 빻은 막 가루로 만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먹기 적전 바로 면을 뽑아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정해진 요리법 없이 손맛을 살려 마구잡이로 만들어 먹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둥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 중 무엇이 정설인지는 모르지만 이유도, 이름도 기가 막히게 찰떡궁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100% 순메밀국수의 깔끔함

메밀국수의 올이 유난히 굵고 색이 짙으며 찰진 식감이 느껴진다면, 전분이나 가성소다를 조금 넣어 반죽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 부드러운 메밀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100% 순메밀국수인지 확인해 볼 것. 메밀껍질이 들어가지 않은 순메밀국수는 정갈하고 보드라우면서도 찰기가 있다. 다만 순메밀국수는 만들기가 까다롭다. 껍질 벗긴 메밀을 빻아야 하는데 입자가 균일해야 하고, 또 도중에 열이 가해지면 안 되므로 맷돌로 제분한다. 빻은 가루는 바로 반죽해야 하며, 완성된 반죽은 바로 사용해야 한다. 묵혔다가 국수를 뽑으면 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죽을 너무 치대면 단단해지고, 조금만 덜 치면 찰기가 없다. 좋은 재료만큼이나 숙련된 솜씨가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제대로 만든 순메밀국수는 얇아도 씹는 맛이 쫀득하게 살아 있다. 맛이 깨끗해 어느 육수와 곁들여도 잘 어울리고, 양념장이나 김치를 넣어 간간하게 비벼 먹어도 맛있다.

메밀은 추운 기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파종 후 100일 이내에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번식력도 강하다.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 메밀은 희고 잔잔한 꽃무리가 드넓은 벌판을 가득 메우는 풍경으로도 유명하다. 메밀 산지로는 강원도 평창군의 봉평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우리나라 최대 생산지는 제주다. 웅장한 풍경도 몇 수 위다. 아마 6월쯤에는 메밀 꽃이 피고 진 자리에 파랗게 청보리가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쉬워하지는 말자. 메밀꽃이 다시 제주를 뒤덮는 9월이 올 때까지, 메밀 요리로 몸과 마음을 달래면 그뿐이니.

춘천골
손수 멧돌기계를 설계 및 제작하여 100% 순메밀국수를 뽑아내는 집
메뉴 : 순메밀 비빔막국수 1만원, 순메밀 물막국수 9천원, 숯불닭갈비 1만2천원
위치 : 서울 강북구 한천로 1050
문의 : 02-992-5772

필동면옥
자칫 밍밍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육수로 정통 평양냉면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받는 곳.
메뉴 : 물냉면 1만1천원, 수육 2만2천원
위치 : 서울 중구 서애로 26
문의 : 02-2266-2611

오무라안
일본인 사장이 직접 만드는 도쿄식 소바와 텐동을 맛볼 수 있는 집
메뉴 : 소바 7천~1만3천원, 김치우동 1만원
위치 : 서울 강남구 논현로79길 66
문의 : 02-569-8610

남경막국수
‘막국수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정통 강원도식 막국수를 맛볼 수 있는 집
메뉴 : 물·비빔막국수 9천원, 메밀만두 7천원, 감자전 7천원
위치 :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7길 52-29
문의 : 02-417-0060

송옥
1961년 문을 연 전통 메밀국수 맛집
메뉴 : 메밀국수 7천원, 메밀비빔국수 7천원, 송옥우동 6천원
위치 : 서울 중구 남대문로1길 11
문의 : 02-752-3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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